S01. 여행 시작 전
전날 치요아범 녀석의 집에서 걔네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고, 또 난 아프간 사태에 관한 인터넷 글들을 지켜보고 하는 등의 일이 있어서 3시에서야 잠들었다. 덕택에 2시간 30분 자고 깨어난 코소.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치요아범 어머니의 차를 얻어 타서 출발지인 서대전역에 도착했다.
S02. #1422 (서대전 06:27 → 천안 07:19) \3,700 / 70.7km
그 상황에서 탔던 광주발 용산행 첫차인 #1422. 치요아범 녀석이 이 시간대의 차는 굉장히 애용했던 모양이다. 정모에 갈 때도, 대학 입시 때문에 서울로 올라올 때도. 둘이 기차에 오르니 좌석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2000년 이후 신조(일명 ‘리미트’. 앞으로도 계속 난 ‘리미트’라고 부를 것이다.)이기도 하고, 장애인석이 있는 차라 좌석을 잡지 못해도 여유가 굉장히 많은 3호차를 선택했다. 그래도 좌석을 잡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천안까지 좌석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토요일인데다 하계 대수송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좌석 점유율이라면, 내일로 티켓으로 호남선 쪽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이 열차를 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리라 보여진다.
정말 아쉽게도 이 열차 안에서 본 것들 등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너무 피곤했다. 치요아범 녀석은 줄곧 잤고, 난 신탄진 철교를 지날 때까지는 기억해 냈지만, 그 다음부터 천안역 도착 1분 전까지 필름이 끊겼다. 깨어 보니 비가 정말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열차는 천안역에 정시에 도착했고, 내리는 비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우리는 장항선 역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S03. 천안역에서
장항선 타는 곳에 도착했는데, 5번 플랫폼 나오는 곳에서 역무원 분과 어느 어르신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내려온 듯한 분이었는데, 무표로 천안역까지 오셨던 모양이다. 역무원이 계속 무표 승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나 남원 가야 돼. 늦으면 책임질 거야? 내가 잘못했으면 잡아가. 잡아가라고!” 하며 큰 소리를 치면서, 정작 역무원 분이 “경찰 불렀다”고 말하니까 “이미 늦었어” 하고서 그 어르신은 그냥 가 버렸다. 양복도 차려 입고 내려오신 분인 것으로 봐서는 그래도 교양은 있는 사람 같았는데, 이런 일을 목격하고 보니 ‘역시 술이 문제인가’ 싶었다. 그리고 역무원들에게 왜 사법 경찰권을 주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가금을 받아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부가금을 받는 행위에 강제성이 없으니 이런 상황이 닥쳐도 어떻게 할 수가 있나.(정 사법 경찰권을 주기 싫다면 사법 경찰권이 있는 철도공안을 항상 대기시키든가 해야 할 텐데, 이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이 사태 때문에 새마을 #1151열차 개표를 할 때 어르신을 상대했던 역무원 분에게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 정도는 드리려고 했는데, 그 분 일이 바쁘신지 날 외면하신다. 그래서 나와 치요아범은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S04. #1151 (천안 07:45 → 장항 10:14) \13,200 / 142.7km
차량은 7량짜리 PP-DHC 동차. (동호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냥 ‘KTX처럼 앞이 유선형인데 낡아 보이는 일반 차량’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계 대수송기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열차였다. 이 열차의 용산역 출발시각은 06시 20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역에 도착한 새마을은 좌석이 거의 꽉 차 있었고, 심지어는 입석까지 받은 상태였다(!) 덕택에 ‘메뚜기질’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냥 계단에 앉아 갈 수밖에 없었다. 좌석에 앉아 가지 못한데다 비까지 엄청나게 쏟아져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승하차 때문에 계단은 축축하지... 이거도 참 생고생이 따로 없다.
홍성을 지나자 두 자리가 이어진 자리가 났다. 자리가 났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곧바로 달려가 털썩. 광천역쯤 도착하니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대천역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린다. 대천을 지나니 승객은 한 칸에 8~9명 수준.
이 열차는 유난히 교행 대기가 길었다. 온양온천에서도 반대편에서 오는 무궁화호를 기다리느라 8분을 대기했고, 간치역에서도 반대편에서 오는 새마을호 대기 때문에 6분을 더 잡아먹었다. 덕택에 이미 판교역에서 장항역에 도착할 시간을 넘겨 버렸다. 이게 다 무배치 역이나 폐역 때문인 거라면 좀 무서운 일이다... 장항에 도착하니 10시 37분. 무려 23분 지연이었다. 배차가 심하게 꼬이긴 했지마는, 우리는 바닷바람 심하게 부는 장항역에 내려 다음 일정을 향한 길을 재촉했다.
장항역에는 장항-군산 간 배 시간표가 걸려 있다. 장항역에서 장항도선장까지는 불과 10분 거리. 장항역을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틀어 쭉 가면 될 정도로 길도 단순하다.
마침 11시에 배가 있었다. 대기시간이 줄었다는 것에서 지연이 도리어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도선료는 1,500원. 기다리고 있는 배는 금강 1호다.
S06. 철도가 아닌 버스로 익산가기
어차피 차를 놓친 것, 한번 걸어서 가면 어떨까 싶어서 군산 도선장에서 군산역까지 걸어갔다. 군산 중앙부를 지나서 25분이 걸렸다. 걸어서 25분 걸릴 정도면 택시로 5분이 걸릴 리는 없다. 포기하길 차라리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역에 도착해 보니 다음 차는 무려 15시 15분에 있었다. 광주까지 일정이 있는 상황에서 그때까지 점심을 먹고 마냥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시외터미널의 위치를 알아내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철도 선로를 넘어가는 육교를 지나는데, 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화물열차가 그때 출발해 버렸다. 잠시 ‘어차피 군산선 타는거면 익산은 다 가겠네. 화물열차를 태워달라고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합법의 영역이 아님을 알기에 그냥 단념하고 계속 걸어갔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시각은 12시에 근접해 있었다. 익산으로 가는 버스는 12시에 출발이었다. 표 파는 곳이 어디 있는가 싶었는데 그곳에서는 자판기에서 표를 뽑는 형식이었다. 버스표 가격은 2,500원. 각자 돈을 넣으려고 했는데 터미널에 있던 아저씨가 1분 남은 상황에서 우리가 안쓰러웠던 모양인지 그냥 만원짜리를 넣으라더라. 표 두 장을 빼고 바로 승차장으로 달려갔더니 버스가 출발한다. 아직 버스가 터미널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겨우 버스를 세우고 승차했다. 분명 철도로 가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적어도, 도로였으니까. 돈을 좀 더 쓰기는 했어도, 철도로 간 것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S07. #1111 (익산 12:46 → 광주 13:59) \10,200 / 109.8km
열차는 4분 지연되어 익산에 들어왔다. 어차피 익산 이남은 반 이상 빈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아 주기 때문에 좌석에 관련해서는 주말에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이 열차에서 노트북을 충전하면서 여행기의 중간정리를 계쏙하고, 치요아범은 새마을호의 TV를 잠깐 보다가 또다시 잠들어 버렸다. 뭐 나도 여행기 쓰다 자는 등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S08. 광주에서
한 명씩 따로따로 만나긴 했지만 두 명과의 만남. (프라이버시의 영역이다. 자세하게는 쓰지 않으련다.) 그리고 우리는 98번을 타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렇다. 이 패스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야구장 여행도 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 본 기아 vs 롯데의 경기. 전날 대전에서 한화 vs 현대의 경기를 볼 때 롯데가 15-4로 기아를 ‘털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도 ‘뭐 기아야 보약이지...’ 하는 생각으로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선발 염종석이 1.1이닝 5실점으로 너무 일찍 무너지고, 구원 주형광은 최희섭에게 첫 홈경기 홈런을 헌납했다. 에휴. 7-0으로 롯데의 패배. 최희섭 홈런으로 인해 이 날 입장권이 기아의 올 시즌 잔여 홈경기 무료 입장권이 되기는 했지만 광주에 올 계획이 내년 5월인 나로서는 쓸모없는 이야기.
S09. #1103 (송정리 20:54 → 목포 21:42) \7,500 / 66.8km
경기는 생각보다 이른 19시 35분경에 끝이 났다. 다시 98번을 타고 40분을 달려 송정리역에 도착했다. 20시 30분경. 송정리역 앞 김밥집에서 김밥을 두 줄씩 시켜 먹고, 새마을호를 기다려 승차했다. 익산을 지나고 난 호남선 열차들은 좌석이 남아도는 경우가 많다. 송정리 이남은 더더욱 그렇다. 익산에서 내리지 않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송정리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내려가면서 또 다시 비가 내렸다. 광주시내와 송정리에서는 마른벼락만을 봤는데, 나주를 지나자 그 벼락이 우리가 타고 가는 열차의 뒤에서 쳐대고, 또 굵은 비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줄곧 우리의 걱정을 유발시켰다. 하지만 일로쯤 오니 벼락도 비도 내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임성리를 지나 목포시에 다다르니 아스팔트 바닥 곳곳에 있는 비의 흔적들. 비가 오긴 왔었나 보다.
목포 시내를 잠시 보고 다시 터널을 지나 우리는 목포역에 다다랐다. 그리고 우리는 찜질방을 찾아 나섰다.
S10. 숙소로
목포에 도착한 우리는 찜질방을 찾아 목포 중심가를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찜질방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역전지구대로 가서 경찰에게 찜질방과 여관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 경찰은 목포역 근처에 찜질방은 없고, 근처에 사창가 비슷한 것들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머무를 만한 여관을 추천해 주는 센스까지. 하지만 그 여관에 들어가니 방이 다 찼다고 한다. 큭. 그래서 나름 주변에 괜찮을 듯한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2만 5천원. 그 곳에서 우리는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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