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6일. 그날은 이명박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든 그렇지 못하든) 물러난 이후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나는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날의 촛불집회에 갔으니만큼, 적어도 이 때 무슨 일이 있었고, 또 무엇을 느꼈는지를 사진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은 역사를 살아가는 이의 책무라면 책무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난 친구의 DSLR 카메라(SAMSUNG GX-1s)까지 빌려 가면서 역사의 현장에 자리했다. (치요아범 미안-_-;;)
철저히 나의 관점에서 보여진 이 날의 기록이니만큼, 그리 많은 가치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기록들 중에 하나로 봐 준다면 ,그리고 수많은 기록들 중에 하나로 기억된다면 나로서는 행복한 일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전부 사진과 사진에 대한 캡션만 달아 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18시 01분. 일찌감치 세종로 앞과 시청 앞 네거리 서울역방향을 막아 준비하고 있던 경찰. 덕택에 시청앞까지 왔다가 시민 교통안내요원들의 지시로 차를 돌려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청와대가 저 앞인데, 명박산성 전경버스는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18시 17분. 시청 광장에 잠시 갔다가 전경버스 차벽 뒤를 보고 싶어 다시 세종로 네거리로 돌아왔다. 이순신 동상 앞의 전경버스들.

전경버스 차벽이 아직 완전히 갖춰진 상태는 아니었기에 세종로 로터리 길을 건너 다시 한번 찰칵.

쳇. 예전에 과외 갈 때 자주 애용하던 골목이었는데. 청와대로 향할 수 있는 골목 하나하나마다 전경버스들은 길을 막고 있었다.

18시 33분.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 뒤쪽 골목으로도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수많은 전경버스들이 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 골목 가운데의 어느 네거리에서.

이번에는 골목 가운데에서 다른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정부종합청사 방향이다. 역시 청와대 가는 길목이니만큼 전경버스들이 상황에 따라 언제든 길을 막을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18시 42분. 집회가 시작되면 인도마저 막기 위해 대기중인 전경버스는 아예 가로수와 쇠줄로 묶여 있다.

19시 42분. 촛불문화제 시작이 예고되었던 19시까지는 거의 노동계 측의 총파업 결의대회 분위기였던지라 사람들이 그리 많이 모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점차 모이고 있는 사람들.

어느 어머니와 아들. 등에 씌여진 문구들이 인상깊다.

19시 51분. 이제 슬슬 집회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꽤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촛불문화제 무대차량. 노동계 쪽하고 공용으로 사용했던 듯.

20시 12분. 너무 사람들이 오래 앉아 있어서 지쳤던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었을까. 가두행진을 시작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숭례문, 남대문시장 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종로로 바로 들어갔다.

20시 30분. 구호들을 외쳐 가면서 도착한 명박(버스)산성 앞. 이명박, 국민들하고 한번 해 보자는 거냐?

20시 35분. 수많은 깃발들, 하지만 깃발이 이 시위의 성격을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듯 촛불들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21시 25분, 명박산성에 맞서는 의미의 국민토성을 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 맞은편의 어느 공사장에서 긁어모아 주머니에 담아 온 모래로 사람들은 열심히 토성을 쌓아올렸다. 국민토성을 쌓기 시작한 자리에 있었던 플래카드.

21시 33분, 그냥 나무 판때기로 막아 놓은 전경 버스, 그리고 '매국노'를 연방 외쳐대던 어느 시민. 알고 보니 저렇게 나무판때기로 막아 놓았던 것은 전경이 들어가 있다가 때가 되면 소화기를 분사하기 위함이었다.

21시 46분. 국민토성 공정률 25%... 정도였던 것 같다.

22시 08분. 해산 경고 방송 몇 차례 (들을 수가 없었다. 계속 꽹과리를 쳐 대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 살수기의 첫 등장. 나는 집회 현장에서 이 살수기를 처음 봤다.

22시 12분. 민주당의 천정배 의원 등 여러 국회의원들이 거의 다 쌓아진 국민토성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고 몇 마디를 한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시민들은 이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며칠 뒤에 앞장서서 시위대를 보호하던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보며 시민들이 진정성을 의심했던 것을 거두어들이긴 했지만, 이들을 의심함이 맞는 걸까, 시민의 한 사람을 보는 것이 맞는 걸까.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22시 22분. 몇몇 사람들이 '조중동에 쓰레기를 버려주세요'라는 요지의 플래카드를 스티로폼 용지 등에 써서 여기저기에 붙여 두고 있었다.

23시 13분, 국민토성은 완성되었고, 국민토성 위에 몇몇이 올라가 자유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 상황에서 교착 상태가 계속되자 경찰은 몇 차례 경고방송 후 (물론 몇몇 시민들은 그때마다 또 꽹과리를 계속 울려댔다. 솔직히 경찰 측에서 경고방송을 몇 차례 해도 그것들은 시민들을 도리어 자극하는 내용일 뿐이었다.) 살수기를 다시 올렸다.

23시 22분, 살수기는 이번엔 진짜로 살수를 위해 올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시민들을 향해 뿌려지기 시작하는 소화기.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진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는 이야기와 "물대포와 소화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서울지방경찰청 명영수 경비1과장의 말이 오버랩됐다.

23시 34분, 전경버스 문이 뜯겨져 나갔다. 시민들을 향해 계속 소화기를 쏘아 대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던 시민들이 줄을 걸어 문을 뜯어낸 것이다. 그 안에는 역시나. 방패를 든 전경이 들어 있었다. 소화기를 침묵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전경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

23시 44분. 물대포와 소화기로 인해 명박산성 바로 앞에 있던 사람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물대포에서 나오는 물들도 상당히 많이 맞고, 또 소화기 성분으로 인해 호흡곤란까지 느꼈을 테니...

지금의 경찰에게 시민들은 폭도일 뿐이었다. (물론 시민 입장에서도 경찰은 권력의 개일 뿐이다.) 살인행위 중단하라는 끊임없는 외침 속에서도 물대포 분사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도 경찰 물대포 사용규정 따위는 무시한 채로.

23시 47분. 통학인이었던데다 다음날 계절학기 수업 등이 있는 이유로 해서 나는 이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광우병 국민대책위에서 준비한 방송차량을 뒤로 한 채 나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 곳을 떠났다.
※ 지금 업로드한 27장의 사진 이외에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에 관련된 사진들도 상당수 있지만, 그 사진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업로드를 할 예정이다.